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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후기] #2. 삼국통일 줄거리

by 꺄꺄꺄 2022. 5. 4.

7세기: 삼국의 통일

신라가 전성기를 한강 유역을 독차지하고, 사방팔방으로 확장하는 것이 지난 포스팅의 마지막, 6세기: 신라 전성기이야기였다. 지난 포스팅은 삼국이 각각 국가 업그레이드를 하고, 돌아가며 전성기 맞는 것을 초첨으로 두고 이야기하였다. 삼국이 통일하는 과정은 그런 것은 다 빼고, 오로지 국가간의 관계 및 전쟁을 초첨으로 두고 적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수나라 등장!

오랜기간 동안 분열되어 있었던 중국, 7세기가 점점 다가오자 하나의 통일 국가, 수나라로 통일되었다. 중국의 역사는 통합과 분열의 역사로, 통합되었을 때는 너무나 강력하여, 우리나라가 기를 펴지 못하고, 쭈그러들었고, 반대로 분열되었을 때는, 우리나라가 활발하게 이리 저리 뻗어나가며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시점이전으로 중국의 마지막 통일 국가는, 한나라로, 이전에 고조선을 기원전에 108년에 멸망시킨 국가이다. 한나라는 서기 9년에 멸망하고, 중국은 1세기부터 쭉 통일되지 못하고, 다양한 형태로 분열되어 있었다. 그래서 삼국사가 활발하게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제 7세기에 가까워져서 통일이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 중국 수나라 통일 멈춰!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 고구려는 중국이 통일 됐다는 소식에 잔뜩 긴장할 수 밖에 없다.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고구려는 수나라를 선제공격 하는 것을 감행한다. 이에 바로 수나라는 반격으로 처음에는 30만 대군을 몰고 침략했으나 문제가 생겨 실패하고, 다시 100만 대군이라는 엄청난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아주 무섭게 진격을 하였다. 수가 너무 많으니 고구려는 머리를 기가 막히게 굴려, 화장실 변기 물내리 듯이, 아주 큰 뚝을 터트려, 100만 대군을 아주 깨끗하게 씻어 바닷가로 흘려 보냈다. 이것이 을지문덕에 살수대첩이다. 얼마나 자신의 지성에 감탄했을까, 을지문덕 장군은 상대 나라의 장군을 능멸하는 조롱의 시를 썼다. 그것이 후대에 널리 퍼져있는 “여수장 우중문시”이다. 이후 수 차례, 수나라가 공격을 감행해왔지만, 무리한 국력 소모로 수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당나라 등장!

수나라가 20년만에 멸망했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다시 분열된 것은 아니기에 곧바로 새로운 통일 국가로 재탄생하었다. 그 나라가 바로 당나라이다. 분열되지 않고, 다시 나타난 통일 국가에 심기가 매우 불편해진 고구려는 천리장성을 축조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 천리장성 축조를 감독하면서 군사력을 장악한 한 장수가 정변을 일으키고, 자신의 국왕을 마음대로 갈아치우고, 스스로 대막리지라는 높은 지위에 오르고는 당나라에게 강경한 태도를 취하였다. 그러자 당나라가 군사를 이끌고 바로 고구려로 쳐 들어갔다. 비록 천리장성을 완공하지 못한 고구려였지만, 성공적으로 당나라 군사를 물리치는 데, 이 전투가 바로 양만춘의 안시성 전투이다. 고구려는 안시성 전투에 승리하고 2년뒤 천리장성을 완공하였다. 하지만 얼마가지 못해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는데…

고구려가 그러는 동안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가 한반도에 제일 최전선에 있고, 중국이랑 직접 국경이 맞닿아 있는 관계로, 고구려는 통일된 수나라와 당나라를 대응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이와 반대로 백제와 신라는 고구려라는 아주 훌륭한 방파제가 있으므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고구려는 신경 쓸 여유가 없고, 백제 신라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신라: 수나라 형님, 고구려를 혼내 주세요.

중국에 수나라가 통일 되었을 때, 잔뜩 긴장한 고구려보고 신라는 느꼈다. 수나라에게 빌붙어야 겠음을. 신라는 고구려를 공격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걸사표라는 시를 지어, 수나라에게 보냈다. 수나라는 고구려가 통일되자마자 선재공격해서, 30만 대군을 보냈으나, 꽤나 피곤함을 느끼고 손을 놓고 있었는데, 신라의 그 걸사표 시를 받고 다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간 것이다. 물론 그 많은 대군은 살수대첩으로 쓸려나갔지만. 100만 대군 사건의 배후엔 어쩌면 신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얼마 안가 수나라 형님은 가셨다고 한다.

백제: 신라, 치러야 할 대가가 있지 않는가?

백제는 신라가 배신한 지난날을 잊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백제가 고구려 왕을 먼저 전사시킨 사건이지만(고국원왕 전사), 그 이후로 고구려한테 짓밟혀서(개로왕 전사) 칼을 갈았고, 이번엔 신라가 배신을 하여(성왕 전사), 백제는 혹독한 배신의 대가가 무엇인지 신라에게 보여주었다. 신라의 40여성이 불타오르고 함락되었다. 이것이 바로 대야성(합천)전투이다.

신라: 고구려 형님,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백제에게 혹독한 배신의 대가를 치르고 있는 신라는 너무나 급급한 나머지, 지난 날 자신이 했던 과오를 모두 망각하고, 적군에 가까운 고구려에게 다급히 도와달라고 요청을 한다. 아마 그 당시에 신라가 알고 있는 고구려왕 영류왕은 조금 온화했던 것으로 기억했던 것일까? 하지만, 다짜고짜 찾아가보니 자신이 알고 있던 고구려왕, 영류왕은 어디간데 없고, 처음보는 새로운 고구려왕 보장왕이 앉아있었고, 그 앞엔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서있는 것이다. 그렇다 방금 막, 정변을 일으키고 고구려 정권을 장악한 연개소문이였다. 그리고 연개소문이 신라의 얘기를 듣고 기가차 목을 잡고 귓속에 말한다. “한강유역 도로 네놓으라”하고 가두었으나 곧 다시 탈출하여 신라로 복귀한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신라는, 사실 나중에 신라 왕이 될자 김춘추(무열왕)가 겪은 이야기였다.


신라: 당나라 형님, 제발 저 좀 도와주십시오.

고구려에게 퇴짜맞은 신라는 이제 당나라에게 붙기로 하였다. 그리고 당으로 건너가 당과 동맹을 맺어, 나당 동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신라는 나라의 많은 부분을 중국식으로 바꾸었다. 중국식 의관을 착용하고, 연호도 당나라 연호로 변경하고, 태평송을 지어 당나라에게 바침으로써 당나라에게 충성을 보였다.

백제의 멸망

나당동맹을 맺은 신라는 단단히 준비한 뒤, 백제에 쳐들어간다. 이때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가 황산벌의 계백, 맞서 싸운 관창?(김유신 아냐?). 여튼 황산벌 전투이다.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한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의 수도 사비성까지 함락하고 말았다. 이로써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게 멸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백제가 멸망했다고해서 갑자기 백제 사람들 모두 사라지는 건 아니다. 백제가 멸망하고 계속 남아 있는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백제 부흥 운동을 펼쳤다.

당나라: 자 둘이 그만 화해하고, 나의 영원한 노객이 되거라.

근데 갑자기 당나라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백제가 멸망한 자리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또 얼마 안가 신라 땅에 계림 도독부를 설치하고, 신라왕을 계림주 대도독으로 임명하는 것이 아닌가. 신라가 얼타고 있는 잠시, 열심히 백제 부흥 운동하는 백제 부흥군이 왜 수군을 덷고 왔다. 물론, 나당 연합군이 빠르게 진압하였다. 이 전투를 백강 전투라고 한다. 다시 돌아와서 당나라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아까 멸망한 백제를 덷고 와서 화해하고 자기들 나라의 제후국이 되라는 것이 아닌가? 아까 백제에 웅진 도독부를 설치하고, 신라에 계림 도독부를 설치한 것은 처음부터 백제와 신라 모두 자기 나라로 흡수할 속셈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신라는 어쩔 수 없이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이 바로 취리산 회맹이라고 일컫어 진다.

고구려의 멸망

고구려에 연개소문이 사망하였다. 연개소문이 사망하고 난 뒤 연개소문 자식 3명끼리 싸우는 큰 분쟁이 일어났다. 이윽고 연개소문 맏아들 연남생은 당나라로 투항했고, 연남생이 당나라로 투항하자, 연개소문 동생, 연정토는 신라로 투항하였다. 투항한 이들을 받아준 나당연합군은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로 쳐들어가, 고구려 수도 평양성을 함락하였다. 이로써 고구려도 멸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당나라는 잊지 않고, 고구려 땅에 안동 도호부를 꼭꼭 잘 설치해놓았다. 물론 고구려도 부흥운동을 잊지 않았다.


신라: 멸망한 나라랑 똑같이 취급하는 건 좀 애바아닌가?

당나라는 멸망한 나라, 백제엔 웅진 도독부를, 고구려엔 안동 도독부를 설치를 했고, 멀쩡하게 잘 굴러가고 있고, 이 때까지 치른 전쟁에 나름 공도 많았던 신라엔, 계림 도독부를 설치하였다. 심지어 백제가 멸망했을 때, 웅진 도독부랑 계림 도독부를 설치하곤, 서로 대등하게 취급하고, 자기네 나라에 예속 되라고 협박을 하지 않던가? 이미 그때부터 신라는 생각하고 있었다. 당나라와 전면전은 불가피하다고.

나당 전쟁의 시작

신라는 당나라에게 먹히지 않고자, 자기 몫을 챙기고자, 고구려가 멸망했을 때, 바로 고구려 영토에서 압록강을 건너 당나라를 요동 지역을 공격을 시작했다. 삼국 통일의 마지막, 당나라의 한반도의 지배욕을 저지시키는 나당 전쟁이 시작되었다.


옛 백제 영토에서

신라는 옛 고구려 영토 쪽, 요동에서 당나라를 공격을 시작한 반면에, 옛 백제 영토도 탈환하기 위해 웅진도독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에 당나라도 취리산 회맹했던 서약서를 분노스럽게 찟고, 신라를 찟어 웅진 도독부에 통합시키고자 반격을 시작했다. 옛 백제 영토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전투 끝에, 신라가 백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고, 사비(부여)에 소부리주를 설치하였다. 당나라가 지배하는 기관은 도독부로 끝나고, 신라가 지배하는 기관은 ~주로 끝나나 보다. 백제 영통 지배권을 두고 치열하게 벌어진 이 전투를 석성 전투라고 한다.

옛 고구려 영토에서

웅진 도독부가 함락 당하고, 옛 백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뺏긴 당나라는 열이 뻗혀, 신라 권력 체계에 혼란을 주려는 의도인가, 현 신라왕을 부정(관작 삭제)하고, 현 신라왕의 동생을 신라왕으로 인정(책봉)하였다. 음… 이어 여기저기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마전 전투. 적성 전투. 신라가 옛 백제에 있던 웅진 도독부를 축출하고 백제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획득한 것 처럼, 신라는 옛 고구려 땅에 설치했던 안동 도호부를 요동으로 축출 하고자 하였다. 신라는 당의 20만 대군을 격파하고, 전쟁 주도권을 회득한 매소성 전투에서 승리를 하였다. 이로써 안동 도호부도 축출하는데 성공 하였다.

나당 전쟁의 끝

신라라 연합해서, 국가를 차례대로 멸망시키고, 착실히 도호부를 설치함으로써 한반도까지 통일시키려고 하였으나, 신라가 옛 백제에 웅진 도독부, 옛 고구려의 안동 도호부를 모두 박살내버렸기에, 당나라는 한반도에 대한 지배권이 모두 소멸되어 버렸다. 당은 이제 철수하고자 한다. 웅진 도독부에 남아있는 당군도 모두 철수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이제 육상에서의 전쟁은 모두 끝났기에, 황해도 해로를 통한 철군을 위해 신라의 측면, 기벌포를 공격한다. 신라는 이 기벌포 전투라고 불리우는 전투에서 당나라 수군을 섬멸했다. 이것이 나당전쟁의 마지막이였고, 더 이상 당나라는 신라를 공격하지 않았다.

삼국통일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 고구려를 차례대로 멸망시켰고, 마지막, 당나라의 한반도에 대한 지배 욕구도 저지시킴으로써 삼국통일을 완성하였다. 허나, 옛 백제 영토 모두에 대한 지배권은 획득했으나, 고구려 땅덩어리가 워낙 큰 탓에, 옛 고구려 영토 모두에 지배권을 획득하기란 어려웠다. 오늘날 처럼 영토는 칼처럼 그을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라의 공식적인 지배범위는 북한에 큰강중에 하나 대동간 이남 지역인데, 이것도 당나라가 인정해준 영토 범위이다.

전쟁 직후 당나라와 신라는 매우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고구려는 멸망했지만, 그렇다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것도 아니고, 그 넓은 땅덩어리를 서로 분쟁을 겪고 있는 두나라가 온전히 지배력을 행사기가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이 관리 되지 않는 옛 고구려 땅에 신생국가가 생겨나기도 했다. 나중에 이 옛 고구려 땅에서 발생한 세력들이 꽤나 사납고 골치 아프닌까, 당나라와 신라는 서로 화해를 하고, 당나라가 신라를 공식국가로 인정하면서, 서로 교류도 많이 하고, 대동강 이남이라는 경계선도 공식적으로 확실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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